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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mann Carnaval Op. 9 슈만 카니발 / 21개의 변주 해설, 감상 / 악보 PDF

C카우 2023. 10. 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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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피아노 소품곡 중에는 아름다운 작품이 많아요. 오늘 소개해드릴 카니발 Op.9는 아베크 바레이션Op.1, 빠삐용Op.2, 어린이 정경 모음 Op. 15 (대표적으로 트로이메라이를 많이 아실거에요.) 과 함께 자주 연주되는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 하나에요.
 
슈만의 카니발은 몇 년 전에 즐겨 듣던 곡이지만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있다가 최근 들어 다시 생각나서 들어본 곡이에요. 오랜만에 들으니 예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다양하고 재밌는 변주가 귀에 들어왔고, 변주에 담긴 의미를 정리해 보고자 포스팅을 남겨보았어요.
 

파블로 피카소, '카니발'


카니발 작곡연도는 1834-1835년이에요. 슈만의 작곡은 1840년을 기점으로 이전은 피아노 기악작품, 이후는 성악 가곡작품으로 나뉘게 되는데요. 
 
슈만은 처음에는 낭만주의 시대의 사상에 동조하여 가사를 통해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성악보다 가사가 없는 기악이 '정신'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한 수 위의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하지만 클라라 슈만과 결혼한 1840년을 기점으로 슈만은 생각을 바꾸어서 수많은 가곡을 작곡했어요. 슈만이 작곡한 가곡의 절반정도에 해당하는 곡들을 1840년 무렵에 작곡하였어요.
 



낭만주의 시대에는 문학작품, 특히 시문학 작품의 성행으로 많은 음악가들이 영향을 받았고 슈만뿐 아니라 다양한 작곡가들 (슈베르트, 브람스 등) 이 시문학의 구절을 가져와서 다양한 가곡 작품을 남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슈만은 특히 아버지가 작가였기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한 문학 작품에 빠져있었기에 음악 작품에도 시적으로 사유한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오늘 소개해드릴 카니발은, 슈만이 21개 각각의 변주마다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붙여놓은 표제(제목)와 함께 들으면 더 풍부하고 재밌게 감상할 수 있어요.

카니발? 사육제? 가면무도회?

 

 
Carnaval 카니발이란 가톨릭교 국가에서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 전에, 고기를 잡아 즐기며 가면을 쓰고 행해졌던 축제에요. 한국어로 Carnaval 은 ‘사육제謝肉祭’(사례할 사, 고기 육, 제사 제)라고 해석되며, ‘축제’라는 의미를 가진 영단어Carnival 의 어원이기도 해요.

 

 

21개 변주에 대한 설명

 
지금부터 여러 개의 주제로 구성된 슈만 카니발 Op.9 에 담긴 내용을 살펴볼게요. 21개 각각의 변주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간략히 정리해 보았어요. 
 

 

Preambule; 전주, 서주

Preambule는 전주, 서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곡의 서론 부분이 시작함을 의미해요. 곡의 시작은 축제의 시작답게 화려한 화음의 연타로 시작해요.
 

장 앙투안 바토, '삐에로 질르'

축제의 서막이 열리고, 상반되는 두 명의 이탈리아 광대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삐에로와 아를르캉이에요.

Pierrot; 삐에로

Pierrot 는 '삐에로'로, 이탈리아 코미디(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하는 광대 중에서도 '슬픈 얼굴 분장'을 한 광대를 의미해요. 술 취한 사람이 걷듯 비틀대는 음형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피에로의 걸음걸이가 연상되는 재미있는 변주에요.
 

폴 세잔, '삐에로와 아를르캉'

폴 세잔의 그림에서, 왼쪽이 삐에로이고 오른쪽이 아를르캉이에요. 

Arlequin; 아를르캉

아를르캉(이탈리어: 아를레키노)은 앞서 등장한 슬픈 분장을 한 삐에로와는 달리, 날렵하고 유쾌한 이미지로 극 중에서 다른 역할을 맡는 광대에요. 덕지덕지 붙여진 누더기 옷에서 유래한 빨간색 착장이 아를르캉의 특징이며, 당시 극 중에서 인기가 많았던 인물이라고 해요. 아를르캉 변주에서는 삐에로 변주에서 느껴졌던 느릿한 우스꽝스러움과는 달리 날렵하고 더욱 신나는 광대의 모습이 연상돼요. 
 

Valse Noble; 우아한 왈츠

Valse Noble 은 '우아한 왈츠'라는 뜻으로, 주제 멜로디를 왈츠로 변주한 부분이에요. 쿵짝짝하는 3/4박자의 우아하고 당찬 느낌의 왈츠로, 귀족들의 만남 풍경을 연상케 하기도 해요.
 

Eusebius; 에우세비오,
Florestan; 플로레스탄

다섯 번째 변주에 등장하는 Eusebius, '에우세비오'는 로마의 교황이었고 (신학 관련된 많은 저작을 남겨서 기독교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여섯 번째 변주인 Florestan, '플로레스탄'은 프랑스의 왕자였어요. 

이런 인물이 왜 슈만의 카니발 음악에 등장하는 것일까요? 이는 두 인물의 성격과 관련이 있어요. 에우세비오는 내향적, 플로레스탄은 외향적인 인물이었다고 하는데요. Eusebius는 느리고 부드럽게 전개되는 반면 Florestan은 빠른 템포와 역동적인 느낌의 변주에요. 슈만은 두 가지 대비되는 음악을 표현하면서, 이 두 인물의 이름을 가져와 제목을 붙였고, 우리는 이를 통해 슈만이 작곡에 있어서 수줍음과 적극성 사이에서의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Florestan 변주에서는 'Papillon Op.2 (나비)'에 나오는 멜로디도 들을 수 있는데요. 슈만이 빠삐용에서도 이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카니발에서도 Papillons로 등장시킨 것을 보아 슈만이 이 멜로디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Coquette; 아양 떠는 여자

발랄하고 장난기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변주에요. 하나의 숙어 표현으로  'play the coquette'가 '아양을 떨다'가 있네요. 음이 통통 튀고 왔다 갔다 하는 변주에서, 애교를 부리며 돋보이고 싶어 했던 당시 여성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요.
 

Replique; 대화 - Sphinxs; 스핑크스

 
Replique 변주는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형식을 띠고 있어요. Replique 변주 다음으로는 Sphinxs라는 뜬금없는 이 악보가 나오는데요. 아홉 번째 변주의 제목 '스핑크스'는 우리가 잘 아는 사자몸에 사람 얼굴이 달린 그 스핑크스에요.

스핑크스 변주의 악보에는 음표가 그려져있지 않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재량 따라서 연주를 하기도, 하지 않기도 해요.


이 변주를 연주하지 않는 경우엔, 수수께끼를 내서 사람들을 시험하는 스핑크스처럼 피아니스트들에게 의문의 악보를 통해서 수수께끼를 던지는 방식으로 남게 돼요. 그리고 만약 피아니스트가 연주회에서 이 부분을 연주한다면, I=l로 표기되어 있는 부분을 음표로 생각하고 연주하여서, 음산한 이집트 유적지에서 스핑크스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신비함을 느낄 수 있어요.
 
Replique와 Sphinxs는 하나의 변주로 묶여서 나오는데 직접적으로 두 변주가 어떤 스토리상의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 Replique에서 대화- 응답의 방식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응답의 방식이라는 아이디어에서 공통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묶여있다고 해요.
 

Papillons; 나비

Papillons는 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이에요. 경쾌한 멜로디의 변주에선 화려하게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어요.

A.S.C.H.S.C.H.A

A.S.C.H.S.C.H.A 변주는 춤추는 단어를 표현한 변주에요. 이 무작위 같아 보이는 단어는, 슈만이 단어의 알파벳을 따와 코드로 변형시킨 것이에요. (A-S-C-H => A(라)-Eb(미b)-C(도)-B(시)) 슈만의 전 약혼자였던 에르네스티네의 고향이었던 ‘Asch’, 독일어로 Carnaval을 의미하는 'Fasching', 슈만의 이름인 'Alexander Schumann', 사순절 첫날을 의미하는 독일어 'Ash Wednesday'에는 전부 Asch가 포함되어 있어요.
 

슈만 카니발, Valse noble

 
이런 방식으로 카니발에는 라, 미b, 도, 시의 음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어요. 
 
참고로 알파벳을 모티브로 따와서 그것을 토대로 작곡한 사례는 슈만 카니발의 A.S.C.H.C.H.A 뿐 아니라 바흐의 B-A-C-H를 활용한 리스트의 BACH 주제에 의한 판타지와 푸가도 있어요. 

 

Chiarina; 키아니라

Chiarina는 슈만의 부인이자 당대의 여성 클래식 작곡가였던 클라라 슈만을 나타내는 이름이에요.

Chopin; 쇼팽

쇼팽을 담은 변주인 'Chopin'은 당시 1810년생으로 나이가 같았던 슈만과 쇼팽의 음악적 교류가 있었다는 걸 나타내주는 변주에요.
 
슈만 카니발에서의 '쇼팽' 변주는 쇼팽의 성격을 드러낸 것일까요? 아니면 음악적 성격을 반영한 것일까요?
 

 

악보와 연주를 같이 들어보신다면, 쇼팽의 음악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쇼팽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여기에서 추가로, 쇼팽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는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앞선 변주에서는 변주에 붙여진 제목들이 인물의 성격과도 연관 있는 것을 보아 슈만이 생각했던 쇼팽의 이미지가 담겨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Estrella; 별 

Estrella는 스페인어로 별이라는 뜻이에요. 별이라는 제목답게 30초 분량동안에 별처럼 반짝 스쳐 지나가는 짧은 길이의 변주에요. 하늘에서 반짝반짝하는 모차르트의 작은 별 느낌과는 상반되게 웅장한 하늘 속에서 소용돌이치면서 빛나는 별이 떠올라요. 
 

Reconnaissance; 재회

Pantalon et Colombine;
판탈롱과 콜롱비느

 

Pantalon et Colombine는 이탈리아 코미디의 등장인물인 판탈롱과 콜롱비느 두 인물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극이 진행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감상할 수 있어요. 
 

Valse Allemande; 독일풍의 왈츠

Valse Allemande 앞서 나온 왈츠에 비해 신나고 가볍게 춤추기 좋을 듯한 왈츠가 나와요.
 

Paganini; 파가니니

Paganini 파가니니는 극악의 테크닉적인 곡들을 작곡해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파가니니 변주는 연습곡(etude에튀드) 같은 느낌이 들어요.

Aveu; 고백

Promenade; 산책


Pause; 휴식

- Marche des Davidsbundler contres les Philistins; 필리스탱들을 토벌하는 다비드동맹의 행진

 

음악의 마무리로 향해가는 변주 부분이에요. 행진곡이 나오기 전 Pause에서 매우 빠른 템포로 다음에 있을 행진이 더 돋보이도록 열기를 돋우어주고, 진짜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폭죽이 터지는 듯한 당찬 행진 장면이 나와요.
 

 
행진 부분의 Molto piu vivace 부분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상당히 닮아 있어요.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이 작곡가가 저 작곡가에게 영향을 받거나, 혹은 동일작곡가가 자주 사용했던 패턴 등이 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슈만의 초기작에도 베토벤의 영향이 드러나있네요. 이렇게 작곡가들끼리 닮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클래식 음악 감상에서 재밌는 요소 중 하나에요.



 

“Schumann Carnaval Op.9”


카니발은 슈만의 음악적 상상 속에서 펼쳐졌던 축제인 만큼, 슈만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녹아있는 작품이에요. 이 21개의 변주를 하나하나 살펴보니 마치 당시 슈만의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드네요. 어떻게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을까요? 슈만의 천재성과 슈만 곡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는 기회가 되었어요.
 
 

슈만 카니발 악보 첨부
 

슈만 카니발 Op.9 악보
4.96MB

 
연주 난이도

변주 하나만 뽑아서 연주하기에는 시시할 것 같고, 전체 변주를 연주한다면 각각 1분 정도 되는 21개의 변주를 30분 동안 하나의 흐름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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